교역자 컬럼 설교모음

아버지의 사랑(2018.02.18)
2018-03-11 23:31:20 | 선우찬우아빠 | 조회 2241 | 덧글 0

아버지의 사랑(눅15:17-24)


탕자라는 말의 뜻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하여 먼 나라에 가서 

다 그 재산을 다 낭비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탕자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탕자의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1. 바라보는 사랑 

돌아오는 탕자인 둘째 아들을 영접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나타내는 몇 가지 주요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보고"라는 단어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먼저 본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았고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그 눈은 긍휼의 눈이었습니다. 

돼지우리에서 쥐엄 열매를 씹고 있을 때에 아버지는 자신의 배를 함께 주리면서 

아들의 허기진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의 초라한 

행색을 그 분의 눈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눈은 사랑하는 아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 아버지의 눈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눈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눈은 아들의 방황을 보고 계셨습니다. 아들이 잠 못 들어 하는 밤, 그 아버지의 눈은 

침상에 함께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함으로 기다리는 기도의 눈이셨습니다. 그 분의 눈에는 오늘도 

여러분을 향한 기다림이 있습니다. 

2. 달려가는 사랑 

아버지의 행동을 묘사하는 두번째 단어는 "달려가"라는 단어입니다. 아들은 달리지 

못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떠나 모든 것을 다 허비해 버리고 

나타나는 아들을 맞이해 주실 것인지를 걱정하는 무거운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아들을 알아본 아버지는 달려오고 계셨습니다. 아들이 한 걸음을 걸을 때 

아버지는 열 걸음을 달려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자비의 

발걸음이셨습니다. 본문에는 "측은히 여겨 달려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그에게 달려 나간 것입니다. 그는 본래부터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축복하기를 빨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교회를 사랑하게 되면 어느 날 달려오게 되실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패턴을 기적처럼 바꿀 것입니다. 여러분과 하나님과 거리가 

있습니까? 저 앞에 아버지가 자기에게 달려오고 계신 것입니다.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3. 회복의 은혜가 있습니다.

세번째 단어는 "입을 맞추니"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아들의 과거에 대한 용서를 의미합니다. 아들은 

용서를 빌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다시 맞추며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강력한 용서의 선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돌아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이미 

아들을 용서해 놓으시고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십니다. 용서로 만족할 수 없으십니다. 아들이 미래를 향해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신분을 회복하고자 하십니다. 22절이 보면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 주시며 새 신을 신겨 주십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석상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선언해 주십니다. "너는 죽었다가 다시 산 내 아들,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내 아들이라고" 그러면 이제 사랑하는 아버지께 돌아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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