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르는 자의 태도(마 8:18-22)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운 목적을
향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목표는 방향을
목적은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왜 사는 가” 하는 것은 목표에 대한 질문입니다.
1. 욕심으로 따르는 자
여러분 당시 서기관은 높은 신분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이유는
예수님께서 불치병자를 위시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직접
목격하고는 예수만 따라가면 한 평생을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계산으로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든 대접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입니다. 유대인은 보통 큰 방 하나에 모든 가족이 잠을 자게 되는데 우선순위에
따라 안쪽부터 서열에 따라 눞게 됩니다. 손님 대접할 떡이 부족한 친구가 가까운
친구를 찿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친구의 급한 사정을 거절 할 수
밖에 없어서 친구의 요구를 거절한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어느 날
예수님께서 손님으로 가셨지만 예수님이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서기관과 같은 생각을 가졌던 제자가 집에 계신 부모님을 장사하고 따르겠다고
말하자 주님은 “죽은 자는 죽은 자가 치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핑계대지 말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왜 예수를
따르십니까? 왜 예수를 믿고 계십니까? 주님의 영광을 위해 따르기를 소원합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이익만을 위해 예수를 따른다면 이 서기관과 내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예수를 쫓을 때 인간적인 이익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따른 것이 이권이 목적 이었다면 예수님을 따름으로
이전 보다 더 큰 부귀영화를 누렸어야 했지만 이전 보다 더 좋은 것을 누린 것이
있습니까? 그의 현실은 누가 보더라도 예수를 쫓기 이전과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 그를 아는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네가 예수에 미쳤다”고 말하잖습니까?
미치지 않고서는 그 좋은 기득권을 다 내려놓고 죄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와 죄인 중 괴수인 자신을
직접 찾아오셔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부르시고, 부르신 것도 감사한데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명까지 주시니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전10:31
절에“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3.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자.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사도바울의 고백과 같이 돈을 벌든 공부를 하든,
정치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면 그 일이 설령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기쁨이 충만 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을 따를 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성도는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신앙생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내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여러분이
되어 주님의 은혜와 기쁨이 삶 속에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