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강을 건너는 신앙(수3:1-6)
오늘 본문도 40년이라는 광야의 온갖 시련을 끝내고 마침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그
강을 건널 수 있었을까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가운데 찾아오는 그런 시련의 강을
건너는 비결은 오늘 말씀을 통해 찾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라.
1절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 말은 말 그대로 ‘아침 일찍’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원어로 보면 이보다는 ‘부지런함, 열심, 최선을 다함’이라는 의미가 더
강조됩니다. 또한 요단강은 건넌다는 것은 단순히 강을 건너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요단’은 ‘세상의 끝’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는 마지막 관문은 이제 죄악과 불순종과 음란과 우상숭배의 땅에서
분리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싯딤은 민수기 25:1절을 보면 발람의 꾀에 넘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제 불순종으로부터 회개, 음란으로부터 정결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넘실대는 급류의 강물이 갈라질 것을 믿고 제사장들이
법궤를 매고 발로 밟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믿음이
불가능의 강을 건너가게 할 줄 믿습니다.
2. 성결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싯딤에서 떠나 요단강가에서 삼일을 유숙했습니다. 드디어
내일이면 요단강을 건너야 할 D-day입니다. 5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는 일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고 자신
있게 선포합니다. 그런데요 먼저 행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성결(카다쉬)’이라는 말의 뜻은 ‘거룩하다,
신성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인 거룩하심 자체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레위기 11:45절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룩하지 못한 백성들과는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결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요건이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라.
3절에 “하나님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구약에서 이 언약궤는 대부분 하나님의 임재나 인도하심을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 계획, 내 의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4절이 그것을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것은 백성들이
법궤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이 멘 법궤를
보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기준이 주님의 말씀이 삶의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실패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없는 삶은 캄캄한
어둠을 헤메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는 23일 주부터 구주의
사랑을 시작하려 합니다. 금번에는 우리도 최선을 다해 봅시다. 그래서 큰 부흥과
축복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